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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역사산책】아베 마사히로, 美 개국 요구에 강경 대응

12/07/01 16:31

  • 복원된 천수각 등이 자리한 후쿠야마 공원 내에 세워져 있는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의 동상=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広島県福島市) 후쿠야마성 공원【교도통신】2012/03/07

1853년 미 해군의 페리 함대가 소위 ‘흑선’을 이끌고 찾아와 중국, 네덜란드 이외의 국가와는 무역을 금지하는 ‘쇄국’ 정책을 펴고 있던 일본에 개국을 요구했다.

당시 도쿠가와 막부의 제12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徳川家慶)는 페리 내항 후 얼마되지 않아 숨을 거뒀다. 쇼군 교대를 둘러싼 혼란 속에 정치를 담당한 것이 후쿠야마번(福山藩)의 번주이자 30대의 젊은 나이로 수석 로주(老中)에 오른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 1819~57)였다.

페리 내항 이전에도 서양 각국의 배가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어 막부는 각국이 개국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네덜란드가 페리 함대의 동향을 전해 오는 등 막부는 세계 정세나 미국에 대해서도 정보를 확보한 상태였다.

아베는 1854년 일본을 다시 찾은 페리 제독과 교섭하기 위해 유학자인 하야시 후쿠사이(林復斎) 등을 기용했다. 가문이나 출신 신분이 아닌 능력을 기준으로 한 인선을 단행한 것이다.

페리 함대의 공식기록 등에 따르면 무역 개시를 요구한 페리 제독에게 일본 측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난파선 구조 등 인도적인 조치가 아닌가”라고 반문해 무역에 관한 논의를 교섭에서 제외하는 데 성공했다.

5개 지역을 개항하라는 미국 측의 요구에 대해서도 에도(江戸)와 멀리 떨어진 이즈(伊豆) 반도 남부의 시모다(下田)와 홋카이도(北海道)의 하코다테(箱館) 등 2곳으로 한정하고 평화리에 ‘일미화친조약(日米和親条約)’을 체결했다.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며 위협한 페리에 대해 일본은 의외로 강경한 태도로 교섭에 임했다. 아베는 페리가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의도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리 내항을 계기로 아베는 도자마(外様) 다이묘(大名) 등에도 의견을 요청해 일본 전체가 문제해결에 동참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공가(公家)나 사쓰마번(薩摩藩) 등 도자마 다이묘의 발언력이 강화되면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베 마사히로의 동상이 있는 ‘후쿠야마성 공원’은 JR후쿠야마역에서 도보 약 5분 거리에 있다. 【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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