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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시인 김시종과 8•15해방 ③

11/10/23 14:57

  • 김시종 시인(왼쪽)이 부인 강순희 여사와 함께 약 50년 만에 제주도를 방문해 부모님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있다=1998년 당시 모습【교도통신】2011/09/29

밀항선 타고 탈출
모래 해변에 주저앉아 울던 그날

<지명수배 그리고 잠복>

들키면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주도립병원 결핵 병동에 위장 입원을 하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이 자기 집에 몰래 숨도록 해줘 뒷마당에 씨감자를 넣어 두는 움막에서 지냈다. 외삼촌은 당시 면장이었기 때문에 바로 집을 수색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외삼촌은 경찰에 정보를 팔고 있다는 무장세력의 의혹을 받고 처형당했다. 죽창으로 옆구리를 찔렸다는 것이다.

외삼촌은 배를 움켜쥔 채 도망쳐 왔다. 바로 죽지도 못하고 소처럼 신음하는 소리를 내면서 매우 고통스러워 하다가 돌아가셨다. 마치 내가 죽인 것 같아서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은 상처로 남았다. 몇 년 전에 부모님과 외삼촌의 넋을 위로하고자 무당을 불러 위령제를 지냈다.

<제주도 탈출>

당시 부모님은 돈이 될만한 거라면 뭐든지 돈으로 바꿨을 것이다. 나를 밀항선에 태워 도망치게 하려면 경관 등 많은 사람들을 돈으로 사야 했기 때문이다. 1949년 5월 탐조등 불빛 속에서 어선으로 인근 무인도까지 갔고 나흘 뒤에 밀항선을 탔다. 배에서는 서기 힘들 정도로 비좁아서 굴뚝에 매달려 갔다. 파도도 맞아가며 비도 맞아가며 중간에 엔진도 꺼지고 그렇게 어디론가 휩쓸려갔다.

그 곳은 아마 효고현 스마(兵庫県須磨)였을 것이다. 배가 해안에 다다르자 동포들은 거미 새끼들이 뿔뿔이 흩어지듯 달아났다. 어디가 동서남북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연고도 없었다. 나는 모래 해안에서 발에 물을 담근 채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쏟아져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다시 볼 수 없는 부모>

제주도에서 헤어질 때 아버지가 해주던 말은 지금도 내 가슴을 찌른다. "만약 네가 죽더라도 내 눈에 닿는 곳에서 죽지 말아라. 네 엄마도 같은 생각이다." 나는 큰 죄를 지었다. 하나뿐인 자식이 빨갱이 도망자라니. 군정 하의 반공주의 속에서 부모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살아 있어도 죽어 있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두 분께 차를 끓여 드린 적도 없었다.

<1958년 부친 사망 그리고 3년 뒤 모친도 사망>

1998년 제주도 부모님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정권으로 바뀌면서부터였다. 친척들에게 욕먹을 각오로 갔는데 다들 나를 붙잡고 "살아와줘서 고맙다"며 울었다.【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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